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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일

글쓴이 : 권경석 날짜 : 2019-03-06 (수) 07:19 조회 : 15
목적이 있는 변화 (눅 9:28~36)

교우님, 보여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고 반가운 얼굴이 안보이면 괜스레 염려가 됩니다. <항상 건강해야 할텐데, 항상 기쁜 일이 있어야 할텐데...>라는 조바심을 가집니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일단은 확인해 봐야 하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난을 당하시고 죽임까지 당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더이상 회생의 가능성이 없다는 선언이고 거기에는 당연히 어떤 영광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변화산의 일들을 통해서 수난이 수난으로 그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우리의 고난을 패배와 굴욕으로만 여기기가 쉽습니다. 한번 대세가 꺾이면 회복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비록 오늘은 현실 가운데 지치고 어려울 때가 많지만 궁극적으로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죄인이 되어서 넘어질지라도 영광까지는 잃지 않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목격된 두 사람 모두 율법과 선지자를 대변하는 놀라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일반적으로 체험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매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초막을 셋 지어서라도 이런 놀라운 체험이 연장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신비한 체험과 또 그 체험을 지속하는데 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런 신비한 일이 신앙의 핵심이라면 에수님은 그 산을 내려오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내려오셔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찾아 가셨고, 십자가 죽음까지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교우님, 신앙생활하면서 영광을 목격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좋지만,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 원동력은 아닙니다. 영광은 누리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역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산 위의 영광가운데 영원히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셔서 우리들의 현실과 부딪히셨습니다. 사역을 위해서 영광의 모습까지도 내려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적이 있는 변화입니다. 교회 구석구석에, 성도님들 가정에 목적이 있는 변화가 일어나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먼저는 자신부터 변화가 나타나야 할테겠지요. 평안을 기도하며 오는 주일 은혜 속에 뵙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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